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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읽고 묵상하기

누가복음 6장 26절~7장 35절

by __👩🏻‍🦰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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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으십니까? 너무나 미운 사람, 내 마음에 상처 준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습니까?

전 이번 성경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눅6:27 <원수를 사랑하라(마 5:38-48; 7:1-5,12 상, 17-20; 12:34 하-35)>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자는 원수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도 잘 대해줍니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나의 것을 빼앗은 이에게 다른 것도 내어주며, 모욕을 해도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합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어려운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면, 그런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요즘 들어 고개를 드는 이기적인 태도, 내 것을 지키려는 인색한 마음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 조금 더 양보하고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눅6: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한 번 주었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시 달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네 것을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주고도 또 많은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넘치는 곳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예수님께 그것을 달라고만 하면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요새 포스팅을 하면서 더더욱 느끼게 됩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을. 모두가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에 주신 것임을. 비록 내가 많은 것을 잃고, 손해를 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의 시야에서만 손해이지, 나중에 긴 인생을 놓고 보면 결코 손해가 아님을 믿습니다. 

 


눅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오히려 내가 받고 싶은 것,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기도와 선행, 희생은 결코 땅에 떨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눅6: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칭찬받을 사람만 사랑하고 아낀다면, 나머지 사람은 누가 칭찬해줄까요. 나머지 사람들, 외면받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은 누가 사랑해줄까요? 내가 사랑할 사람의 범위만을 정해놓고, 그들에게만 사랑을 베푼다면, 그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이 아닙니다.

 


눅6:33 너희가 만일 선대 하는 자만을 선대 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우리가 죄인이지만 구원을 이미 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푼다면, 선별적으로 사랑해준다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누가 사랑을 해주겠습니까?

 


눅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칭찬받기를 위하여 남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람이 아닌 죄인들도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눅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 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 악한 자에게도 인자한 분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그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크나큰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맞습니다. 아무리 밉더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이 과정은 쉽지 않은 험난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돼라
눅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뉴스를 보다 보면, 또 정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우리가 누군가를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 또한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다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눈의 티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내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 앞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분노로부터, 악으로부터. 우리가 원수로부터 뺏기지 않으려고 꽉 쥐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어버리십시오. 놓아버리십시오.

 

저 또한, 많은 것들을 주어버리고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준 모든 것들이 후히 되어 저에게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돌아올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남을 헤아리고, 이해하려 하고, 손해를 보아도 손해라고 생각지 않는 그 마음으로. 저는 분명히 헤아림을 받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저에게 미안해하며, 받은 모든 것들을 돌려주려 함이 분명합니다. 


눅6:39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눅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눅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과 말들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생각하지 않고 내뱉을 때가 많습니다. 나의 행동과 말에 우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습니다. 남의 것을 들추어내고, 지적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맞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하는 네거티브 작전을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본인은 과연 떳떳한가. 본인은 과연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는 남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눅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제 마음에 악이 아니라 선이 쌓여나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지나가는 풀의 냄새와, 잎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도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이 얻는 기쁨을 보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베풀 수 있는 좋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눅6:46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아니하는 자(마 7:24-27)>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눅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눅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성경에서는 좋은 말씀을 늘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사상누각을 지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탁한 물이 집 주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집을 말씀 위에 지어야 할 것입니다. 

 


눅7:1 <백 부장의 종을 고치시다(마 8:5-13; 요 4:43-54)>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눅7:2 어떤 백 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눅7: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눅7: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눅7: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눅7: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 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눅7: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눅7: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눅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눅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믿음이 있는 자에게 예수님은 분명한 방법으로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셔드린 그 순간부터,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을 부르기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병든 사람을 낫게도 할 수 있고,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죽어간 이들도 살리셨고, 부활까지 하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눅7:11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눅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눅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하시고
눅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눅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눅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눅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눅7:18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대답하시다(마 11:2-19)>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눅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눅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눅7:21 마침 그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눅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종교의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고통이 있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고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절제 없는 행동들이 병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딱 한잔만 먹어도 되는 것을 과음하고, 밥을 한 그릇만 먹어도 되는 것을 과식하고. 우리의 잘못된 믿음과 욕심들 때문에 죄가 생기고 병이 생깁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당연한 마음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이것이 화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앞길은 예수님께서 다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눅7: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우리의 믿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습니다. 저도 늘 예수님을 망각하고 저의 욕심에 취해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화려하고 사치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눅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눅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눅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눅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눅7: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눅7:30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눅7: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눅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7: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눅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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